고향의 노래

고향 집 싸리울안, 설날 전야 석유 등잔 불 아래

할머님의 놋쇠로 만든 손 다림질은

아무리 구겨진 옷감이라도 반질반질 윤이 났다.


빨갛게 달은 숯불이 담긴 대접 모양의 놋쇠다리미의

막대 손잡이를 잡고 오락가락 저고리 앞 섶을 눌러 다리면

버선코처럼 뾰족한 코가 만들어지고 치마단 한 겹 한 겹

공들여 다리면 굽이 굽이 주름살이 부채 꽃처럼 피어났다.


색동 저고리 소매가 한결 썰렁해져서 안 입겠다고

새 옷 사달라며 버티던 심술은 어디로 가고

할머니의 손 다림질로 윤기 자르르한 치맛자락에

맘이 쏠려 동생 줄까 하는 말씀 나오기 무섭게

잽싸게 빼앗아 들고는 빨간 엑스란 내의 겹쳐 입은

속곳바지 위에다 허리 둘러 치마입고

색동 저고리 고름 꼭꼭 동여맨다.


가슴 선과 옆구리에 토끼털이 포근했던 배자저고리 입으면

위풍이 센 방안에서도 등허리에 후끈후끈 땀이 났는데

그 따스한 감촉은 명주 솜 이불 덮고 아랫목에 누운 듯하여서

겨울 찬 바람 스칠 때마다 그리움의 본향으로 떠오른다.


설날 아침, 떡국으로 먹은 나이

손가락으로 세어 보니 많기도 하여라.

할머님 말씀대로 떡국 한 그릇 더 먹고 어서 어서

어른 되고 싶었던 그 땐 소망하는 모든 꿈들이

어른이 되면 거저 얻어지는 줄로만 알았었다.


내게 어서 어른 되라고 꼬드기던 춥고 어두운

유년의 앞마당에 널브러진 꿈의 조각들이

벗은 나무 가지에 걸려 휘릭 휘릭 울음 울던

기억의 뒤안길에서 고향의 노래 들려오고...

먼 길 돌아 30 여년 부모님과 할머님처럼

병풍 두른 아랫목 방석 위에 앉아

조카, 손주들의 세배를 받는다.


색동 저고리 고운 빛깔 따라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유년의 기억들

할머님의 말씀이 꽃 등불로 타오르는데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이니

한 그릇 더 먹겠다는 어린 조카, 손주들 떡국 그릇으로

떡국 반 그릇 슬며시 덜어 낸다.


떡국 반 그릇이니 나이도 반 살만 먹는다면 좀 좋으랴.